다시 돌아온 집, 그리고 다시 보이는 장면들
밥솥 아래 화분받침대 하나로,
“괜찮다 “ 뒤에 숨겨졌던 불편함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혼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을 때,
이상하게 낯설었다.
내가 결혼하고 집을 떠난 사이,
부모님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셨기 때문
구조는 비슷하지만
벽지와 바닥, 가구 배치가 달라지면서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선 느낌이었다.
새벽녘, 새로 짠 싱크대 앞에서
엄마는 여전히 똑같이 밥을 하셨고,
식탁은 새 걸로 바뀌었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아빠의 자세는 그대로였다.
분명 공간은 달라졌는데..
그 안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날 대해준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나만 혼자 이 집에 어색하게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방인이 된 이후로 어색한 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구석구석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침마다 엄마가 밥솥에 밥을 푸기 시작할 때마다
자꾸 걸리는 한 장면,
키가 작은 엄마가 자꾸 까치발을 들면서
힘들게 밥을 푸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엄마는 불편함에 적응이 되신 건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키가 작아져서 그렇다며 웃으면서
별일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밤에 누워있는데
그 까치발이 자꾸 생각났다.
다음 날,
조용히 밥솥 밑에
바퀴 달린 화분 받침대(?)를 몰래 깔아드렸다.
앞으로 뒤로 쓱쓱 밀어보시더니
“이거 참 잘 샀다 진짜.”
아이처럼 활짝 웃으시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
그동안 얼마나
말없이 참고 계셨을까,
그걸 나는 왜 이제야 보게 된 걸까.
이 집엔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불편함이 있다.
아니,
말하지 않으면 도저히 모를 수 있는 불편함이 있다.
말보다는,
엄마의 손짓.
아빠의 걸음걸이.
동생의 음식 취향.
그 안에 숨어 있는
”괜찮아 “의 진짜 의미를
조금씩 배워가고 적응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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